[기자수첩]국내 첫 영리병원 개원 허가 '씁쓸한 단상'
공론조사위 '불허' 권고안에도 제주도청 조건부 허가
"제주미래 위한 불가피한 선택"…민주주의 퇴보 신호탄

제주도가 5일 영리병원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허가했다. 국내 첫 영리병원이 개원을 목전에 둔 것이다.

제주도가 5일 영리병원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허가했다. 국내 첫 영리병원이 개원을 목전에 둔 것이다.

이같은 결정은 숙의형 공론조사의 결과물인 '불허 권고안'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당초 녹지국제병원 개설과 관련한 숙의형 공론조사는 지역단위에서 처음 시도된 숙의형 민주주의 실행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국내 1호 외국인 투자병원이라는 점에서 공공의료 약화-의료영리와 논란의 중심에 있는데다, 지난해 제정된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 기본 조례가 제정된 후 처음 적용됐다는 점도 이목을 끌었다.

지난 3월 제주도의 공론조사 계획 표명 이후 위원회 구성 및 토론 등의 과정을 보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숙의형 민주주의의 발전을 도모했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우여곡절 끝에 7월에 도농업인회관에서 열린 첫 토론회는 이 같은 기대를 반증하듯 3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불꽃 튀는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반대측은 영리병원 뱀파이어(좀비)효과로 인한 의료비 폭등 및 건강보험 무효화 등을 주장했다. 찬성측은 향후 일어나게 될 소송전과 이미 추진된 사업인만큼 영리병원을 통해 수익을 도민에게 환원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라고 영리병원 타당성을 강조했다.

이후에도 찬성측과 반대측의 팽팽한 입장발표, 기자회견, 그리고 수차례에 걸친 도민참여단 회의, 최종 설문조사 등 이 모든 과정이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양분이였다.

지난 10월 4일 공론조사위원회는 '불허' 권고안을 제주도에 제출했다. 최종설문조사 결과 58.9%(106명)가 개설 반대에 답하며 개설허가 38.9%(70명) 대비 20%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권고안에 원희룡 지사는 즉답을 피하면서도 "공론조사위의 권고안을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했고, 이후 도의회 도정질문에서도 ‘권고안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답변은 모두 3번에 걸쳐 이뤄졌다.

고심을 했다는 원 지사의 선택은 '불허 권고안'이 아닌 '조건부 허가'. 이 발표에 있어 도청 문까지 걸어잠그는 시대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제주의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물론 '투자자인 녹지그룹에 비영리 전환을 권유했다', '중앙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인수하는 방안도 있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등의 해명도 함께 말이다.

또한 의료비 폭등, 건강보험체계 붕괴 등 국내 영향 원천 차단을 위해 철저한 지도감독도 약속했다.

문제는 공론조사위의 결정을 뒤엎음으로써 숙의형 민주주의는 더 이상 발을 붙이기가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자그마치 9개월간의 노력이었다. 아니 지난 2월 시민사회단체가 공론조사를 요청했음을 감안하면 10개월간의 노력이었다.

찬반의 팽팽한 격돌 끝에 공론조사위에서도 압도적인 반대에서 6대 4라는 근소한 의견차를 보였을 만큼 성숙된 숙의형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노력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원 지사는 이 말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숙의형 공론조사를 발표했을때 원 지사의 말이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도민사회의 건강한 공론 형성과 숙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앞선 모범사례를 만들어갈 것으로 기대한다. 수년간 지속된 논란을 끝내고 제주공동체의 공익을 위한 전환점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문서현 기자.

그런데 오늘 영리병원 조건부 허가를 발표하면서 “어떤 비난도 달게 받겠다. 정치적인 책임은 피하지 않겠다”는 이 말은 두고두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번 영리병원 조건부 허용 결정을 원 지사가 그만큼 강조했던 모범사례가 아닌 숙의형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최악의 선례로 작용할 것이며, 수년간 지속된 논란에 새로운 논란을 더하는 갈등의 신호탄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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