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2년 7월7일 의사 김완근이 제주시보건소에서 간호사 고옥자씨의 도움을 받으며 어린이의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윤식 어린이를 진찰하고 있다.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 진찰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인 이 사진은 제주시에 의료시설이 거의 드물던 시절 진료를 받는 장면이다. 정갈하게 머리를 올리고 한복을 입고 있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초조하다.(클리프
▲ 별도봉에서 바라본 화북동 모습이다. 멀리 삼양동의 원당봉과 그 북쪽 자락에 위치한 북제주군화력발전소가 보인다. 앞에 보이는 길이 현재 오현고등학교를 지나 왼쪽으로 돌아 화북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화북에는 관포 역할을 했던 화북포구를 비롯해 화북성곽, 화북포구를 드나들며 선정을 베풀었던 목사, 관리들의 선정비가 세워진 비석거리 등이 유명하다. 화북은 고전
▲ 애월읍 유수암리는 제주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18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팽나무 군락 아래로 초가들이 정겹다. 해발 200~250m 높이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로 유수암, 거문덕이, 개척단지 등으로 이뤄져 있다. 강씨, 이씨, 변씨의 집성촌이며 주 소득원은 감귤이다. 유수암(流水岩) 바위 사이로 한라산 맑은 물이 흐르는 마을이라고 유수암리라고 했다.
▲ 1942년 늦가을, 제주도립병원 산부인과에 근무하던 간호사 에모도(우리나라 이름 순정)가 결혼을 앞두고 퇴직하게 되자 도립병원 뒤뜰에서 기념촬영한 모습이다. 카메라가 귀할 때라 지금의 중앙성당 입구에 있었던 사진관에서 출사 촬영했다. 앞줄 가운데가 산부인과 과장인 일본인 고지마 미쓰요시, 오른쪽은 장시영이 산부인과 조수로 당시 의사면허시험 2부에 합격해
▲ 1970년대의 여름날 국토 최남단 마라도 풀밭에 세워진 '고래돌'(연자방아의 돌판) 위짝을 중심으로 뛰노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모습이다. 어린이들의 꿈이 하늘 위로 날아갈 것 같은 자세이다. 이들도 이제는 40대 중반이 됐다.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2'에서 발췌.
▲ 사진은 민간등대로 사용됐던 제주시 용담동 '다끄네' 포구의 등명대로 1957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주도내 등대는 1906년 우도에 무인등대가 세워진 뒤 1915년 마라도등대, 1916년에는 산지등대가 설치된다. 이처럼 관에서 세운 등대와 달리 민간에서도 해안에 등대를 세우게 되는데 이를 '도대' 또는 '등명대'로 부른다. 이 도
▲ 1969년 서귀포초등학교에서 열린 마을 대항 씨름대회 모습이다.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씨름경기를 학생들과 마을주민들이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다. 씨름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경기장을 빙 둘러앉아 소속팀 선수들을 응원하는 모습에서 승부욕을 느낄 수 있다. 서귀포지역 마을 대항 씨름대회는 일제강점기부터 성행했다고 한다. 마을 간 경계를 정할 때도 씨름대회를 통
▲ 1960년대의 서귀포항 일대의 모습이다. 남제주의 중앙에 위치한 서귀포항은 소규모이긴 하나 비교적 안전한 천연의 항구이다. 오늘날과는 달리 개발되기 이전의 서귀포항 모습은 제주도에 있는 항구가 모두 평면적인데 비해 항구 구성이 입체적이었다. 서귀포는 한라산의 경사가 급하게 바다로 뻗어 내린 곳에 생긴 지반 위에 건설된 마을로, 단애의 절벽 위에 마을이
▲ 제주의 많은 해수욕장 중에서도 삼양동의 모래사장은 특히 유명하다. 삼양해수욕장의 검은 모래가 신경통 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는 예부터 널리 퍼져 일제강점기에는 제주도내는 물론 육지부, 심지어 일본에서도 모래찜질을 하기 위해 이 해수욕장을 찾았다고 한다. 바로 앞에 드넓은 바다가 펼쳐지고, 가까운 곳에는 시원한 담수가 있어 뜨거운 찜질로 시달린 몸을
▲ 항구 끝으로 방파제와 등대가 보이는 1970년대의 추자항 전경이다. 방파제 인근에 흰색 건물인 추자수협 어판장과 제빙공장, 그리고 추자항 대합실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도로는 추자도에 배치된 해군 3525부대로 향하는 길이며 당시에는 비포장도로였다. 추자항 너머로 추포도, 횡간도 등 유인도와 염섬과 이섬 등 무인도들이 펼쳐져 있다. 추자항 내항에 정박해
▲ 1960년대 구 제주도립제주병원(이후 한동안 제주대병원으로 사용됨) 옛 본관에서 거행된 제주도립제주병원 부설 간호학원 현판식 장면이다. 당시에는 비좁은 도립병원에 도위생시험소가 있었는데 그 후 제주위생시험소는 제주도보건환경연구원 등으로 기구가 확대되면서 독립 청사를 마련, 분가했다. 이처럼 제주도립병원제주병원과 도위생시험소가 두 살림을 살고 있는 비좁은
▲ 1967년 10월 제주시 서문시장 남쪽, 삼담치안센터와 인접한 교차로 일대에서 현재의 퍼시픽 호텔 방향을 따라 하천 주변으로 형성됐던 제주오일장의 전경이다. 주민들이 땔감용 나뭇단을 한 묶음씩 쌓아놓고 팔고 있다. 판매하기 위해 진열해 놓은 항아리들도 보인다.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를 따라 주민들과 상인들이 팔 물건을 가지런히 진열해 놓고 손님들을 기다리
▲ 서부두 방파제 인근에서 열렸던 오일장 주변의 모습이다. 물건을 싣고 왔던 말과 마차가 보인다. 뒤에 보이는 축대는 서부두 방파제로 보이며, 멀리 사라봉도 보인다. 한껏 멋을 낸 세 여인이 양산을 들고 서 있다.(고영일 사진)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2'에서 발췌.
▲ 1960년대 말 한림읍 귀덕1리 포구를 보수하기 위해 아낙들이 맨손으로 돌은 나르는 장면이다. 노력봉사에 동원된 마을 사람들은 제각각 제 힘에 맞게 맨손으로 돌을 등에 지거나 허리춤에 끼거나 안아 나르고 있다. 아낙네가 신은 흰 고무신과 검정 고무신이 무겁다. 남정네는 담 위에 올라 작업 지시를 하고 있다. 한림읍 귀덕 1리에는 '복덕개'와 '모살
▲ 조선시대 제주의 정치 · 행정의 중심지였던 제주목(濟州牧) 관아지(官衙址) 1단계 복원사업이 마무리돼 2003년 1월22일 준공됐다. 이날 준공식에는 노태섭 문화재청장과 우근민 제주도지사, 김태환 제주시장, 역대 제주목사의 후손, 시민 등 1천여명이 참석해 경축했다. 제주시는 1991년 제주시 삼도2동 43-2번지 일대 제주목 관아지에 대한
▲ 애월읍 하귀1리인 동귀리 어촌계원들이 채취한 톳을 공터에 널어 말리고 있는 모습이다. 건물 뒷편에 이 마을 포구인 '항개'가 있다. 제주도에서의 톳 채취는 음력 3월에 어촌계원들의 공동작업으로 이뤄진다. 만일 불참하게 되면 다른 사람을 사서 대신 일을 시키거나 궐을 내야 한다. 지금은 채취한 톳의 대부분을 일본으로 수출한다.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
▲ 제구촌의 섬들이 모여 토속적인 섬의 문화를 펼쳤던 '98제주세계섬문화축제'. 1998년 7월18일부터 8월13일까지 27일간 제주시 오라관광지구에서 열린 이 축제의 주제는 '섬, 늘 푸른 미래를 위하여'였다. 서사모아, 페낭, 지중해의 샤르데냐, 크레타 등 25개국에서 28개 섬이 참가, 섬나라 고유의 민속무용, 전통음악, 전통음식, 풍물 등 볼
▲ 여름철 구좌읍 하도리에서 만난 어부 내외가 바람 지나는 그늘에 앉아 일하는 모습이다. 남편은 그물을 손질하고, 부인은 옷을 수선하면서 한쪽 발로는 '애기구덕'(아기를 눕혀 흔들어 재우는, 대로 만든 기구)을 흔들고 있다. 멍석이 세워 있고, '정짓문'(부엌문) 곁에 '짇을커'(땔감), '물팡'(물동이 따위를 올려놓는 대) 위에는 '물구덕
▲ 1949년 가을 제주4.3사건이 한창일 무렵 전도학생연맹 대표들이 모여 함덕에 주둔중인 군부대를 찾아가 위문공연을 했다. 당시 위문공연에선 40여명의 학생들이 연극.무용.노래를 공연했는데 학생연맹 대표들은 제주농고와 서귀중학교 학생들이 많았고 공연지도는 강성빈이 맡았었다. 이 사진은 공연을 마치고 함덕해안가에서 촬영한 것으로 앞줄 어른들은 군인들이고 가
▲ 옹지종기 자리 잡은 초가집들 사이로 수건을 머리에 둘러쓴 마라도의 아낙네들이 '솔박'을 이용해 탈곡한 곡식을 바람에 불려 정선(精選)하고 있는 모습이다. '솔박'은 '속박, 손박, 솜박, 솔빡, 좀팍, 좀팍세기' 등 여러가지로 불리는데, 둥그스름하고 납작하게 펴서 만든 나무그릇으로 곡식을 퍼 담거나 바람에 까불려서 고를 때 사용했다. 바람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