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전반 인력 필요, 행정·농협은 수확철만 지원 ‘한계’
농민들, “매년 반복되는 문제지만 해결책은 없어 답답”
제주 농협과 행정, 이달 ‘농업인력지원센터’ 운영 계획

양파 수확중인 모습.

본격적인 농사철이 다가왔지만 제주지역 들녘에는 한 숨 소리가 가득하다. 씨를 뿌리고 수확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필요한 농사지만 정작 사람이 부족해 일을 못하는 상황이 매년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중 다행으로 제주도와 농협이 나서 이번 달부터 ‘농업인력지원센터’를 운영할 계획이지만 농민들은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제주경제 근간이라 불리는 농업이 무너지게 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양파와 호박 농사를 짓는 이모씨(48)는 사람이 없어 이젠 ‘자포자기’상태로 농사를 짓고 있다.

이씨는 “사람이 없어서 양파 농사를 지난해에 비해 대폭 규모를 줄였다. 조금 있다가 호박을 심어야 할 텐데 사람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다”며 “농사지을 사람이 없으면 이제 농사도 접어야지(설러야지) 않겠나. 사람이 없어서 농사를 못 짓는 시절이 와버려서 씁쓸하다. 옛날처럼 동네에 사람이 많으면 품앗이(수눌음)라도 할 텐데 이젠 품앗이도 안한다. 인력 부족 문제가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이젠 그러려니 하고 산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본격적인 감귤나무 전정 시기가 돌아왔지만 농민들은 일손이 부족해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농협과 행정이 추진중인 프로그램이 대농에게 맞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시기도 수확철에만 인력이 집중되고 있어서다.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에서 농사를 짓는 김모씨는 “한창 감귤나무 전정 시기인데 사람이 없어서 큰일이다. 더욱이 하우스 감귤나무는 파이프에 묶어줘야 열매가 맺히면서 나무가 상하지 않는데 지금 그 일을 할 사람이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며 “더욱이 농협이 추진중인 인력지원 프로그램은 대농에게만 맞춰져 있어 소규모 농사를 짓는 나이든 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게 많아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귀포시 남원읍에서 농사를 짓는 또다른 농민 김모씨는 “감귤 나무 전정하는 것이 전문적인 일이기 때문에 인건비도 비싸다. 그렇다고 농협에서 인력을 지원하는 것도 아니어서 농업 생산비에 큰 어려움을 차지한다”며 “농협이나 행정이 인력을 직접 지원할 수 없다면 인건비라도 일정 정도 지원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제안했다.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서 농사를 짓는 김모씨(51)도 일손 부족 문제로 답답함을 토해내고 있다. 농협이 일손 돕기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지만 농민들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사가 씨를 뿌리고 수확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에 일손이 꾸준히 필요한데 특정 시기에만 인력지원이 집중되다 보니 농민들은 농협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그렇다 보니 나이든 농민들은 농사를 접고, 농지를 영농조합법인 등에 임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씨는 “요즘은 나이든 분들이 농사를 많이 포기하고 있다. 농사를 지어봐야 씨를 뿌리고 수확할 때 인건비로 많은 비용이 지출돼 농사를 지을수록 빚만 늘어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결국 김녕지역에 마늘과 양파가 주 작목이었지만 지금은 영농조합법인 등이 투기성 작목인 월동 무, 유채까지 재배하고 있다. 이농 이탈 현상이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렇게 가다간 농민 없는 농촌이 다가오는 건 시간문제다. 실제 크게 농사를 짓는 영농조합법인들은 외국인 노동자를 선호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은 실질적인 인력지원이 필요한데 이게 답이 있겠나”라고 절망감을 내비쳤다.

농협 제주지역본부는 이 같은 문제를 다소나마 해소하기 위해 ‘제주농업인력지원센터’를 이번 달부터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관련 조례를 근거로 제주도가 예산을 대고, 농협이 맡아 연중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농협 제주지역본부는 농업인력지원센터를 통해 농업인력 지원에 따른 숙박 등 편의시설을 지원한다. 바쁜 농사철에 노동력과 부수업무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농협에 따르면 마늘과 감귤 수확기에는 각각 2만5000여명, 2만7000여명 일손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농협 제주지역본부와 제주도는 본격적인 농작물 수확이 시작되기 전 인력을 투입하기 위해 협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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