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원도심 재생사업 “정주권 확보가 먼저”

[좌승훈 칼럼] 도시재생사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최근 제주시 관덕정 광장 복원과 문화예술거리 조성사업을 놓고, 주민・행정 간의 불협화음이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도시재생사업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사업 대상지인 삼도2동은 일도1동・용담1동과 함께 제주시 19개 동(洞)지역 중 가장 낙후된 곳이다. 제주연구원의 도시 쇠퇴도 종합 분석(2013. 11) 결과, 그렇다. 도시재생 중점 정비구역 중 하나다.

문화예술거리에 있는 빈집과 옛 제주극장 건물. 극장 건물은 안전평가에서 E등급을 받아 철거가 불가피하다. 주민들은 예술공간이니 문화예술거리 조성 보다는 주거환경 개선이 먼저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 ‘하향식’ 접근에 ‘아니면 말고’ 식의 ‘엇박자’ 행정

이에 대한 지자체의 해법은 ‘문화’다. 제주도와 제주시, 제주문화예술재단은 원도심 활성화 차원에서 옛 제주대 병원(중앙로 14길)과 옛 제주극장・제주화교소학교(관덕로 2길), 삼도2동 주민센터(관덕로 4길・6길, 중앙로 12길) 일원에 문화예술 거점 조성사업을 추진해 왔다. 관덕정 광장 복원사업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문제점도 적잖다. 우선 관 주도의 일방적 하향식(top-down)으로 사업이 추진되다보니, 곳곳에서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주민들로서는 제대로 된 소통과정도 없이 지자체가 만든 밑그림을 따르라고 하니, ‘우리만 ᄄᆞᆯ라분(따돌린)’ 느낌이다.

관덕정 광장・서문(진서루・鎭西樓) 복원과 ‘차 없는 거리’ 추진이 단적인 예다. 65억원이 투입되는 관덕정 광장 복원사업은 서문사거리와 중앙사거리 500m 구간에 '차 없는 거리'를 조성해 원도심 중심의 상시 문화·예술축제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아울러, 서문 복원을 위해 주변 토지(건축물)를 매입한다는 게 이 사업의 골자다.

그러나 이는 정주권(定住權)과 직결된다. 주민들이 일정한 곳에 머물러 살 권리다. 당연히 사업 추진과정에서 건물 철거, 토지 수용이 불가피하고, 당사자는 결국 삶의 근거지를 잃게 된다.

따라서 충분한 소통이 필요했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가 된 후에야 알게 됐으니, 주민들로서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결국 행정은 일제 강점기 때 찍힌 사진 한 장이 전부인 서문 복원 계획을 철회했다. 지난 3월 주민 토론회가 열린 후, 일주일만의 일이다.

‘차 없는 거리’ 조성도 제외됐다. 다만, 관덕정 광장 복원과 관련해 서울 광화문 광장처럼 교통을 일부 통제하는 식의 기술적 검토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삼도2동 문화예술거리. 문화예술거리 활성화 관건은 접근성 개선을 통한 유동인구 확보인데, 주차난 때문에 보행환경이 매우 취약하다.

# 관광객 유치가 목적…주민 정주권 확보는 ‘뒷전’

주민들은 행정에 묻는다. 주민 반발에도 관덕정 광장 복원과 ‘차 없는 거리’ 사업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 가다.

게다가 관덕정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에 565억원을 들여 만든 탐라문화광장이 있는데도 행정이 말하는 원도심 상시 문화·예술축제공간으로서, 탐라문화광장과 관덕정 광장이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답은 단순하다. 관덕정 광장은 제주의 문화적・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서, 복원하면 많은 관광객이 유입되고, 상권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인근 동문・서문시장이 살아나고, 원도심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게 행정의 논리다.

그러나 도시재생의 핵심 가치인 정주권은 뒷전이다. 주거환경 개선을 통한 주민 행복보다도 관광객 유치가 우선인 것이다.

도시재생 사업은 행정이 중심이 된 기존 재개발・재건축 사업과 다르다. 도시재생사업은 도시 확장으로 인한 도심 공동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주민들이 사업 구상단계부터 참여해 유・무형의 생활기반을 스스로 개량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지역 주민이 주도하는 민관 협력의 ‘상향식(bottom-up)’ 접근이 전제가 돼야 한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당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사업에 반영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 문화예술거리 ‘접근성’ 취약…전시행정 전형 비판

문화예술 거점 조성사업도 그렇다. 제주시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 동안 33억원을 들여 문화예술거리 조성사업을 추진했다. 또한 2014년부터 빈 점포 임대사업을 통해 현재 13개소 16명의 작가가 입주했다.

그러나 이 역시 전시행정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550m 구간의 도로 블록 포장에 야외 전시・친수 공간을 조성하고, 경관조명을 설치해놓았으나, 정작 주차난 때문에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

낮 시간대에도 입주 작가 대다수는 점포 문을 닫고 있다. 찾는 이가 드물어 가게가 유지될 리 없다. 문화예술거리 조성과 함께 사람들로 북적돼야 할 공간이 불법 주차공간이 돼 버렸다.

전시행정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옛 제주극장 앞 야외 전시공간(사진 왼쪽). 또한 불법 건축물 철거 후 마무리가 잘 안 돼 옛 화장실 터가 그대로 남아있으며, 가림 막을 쳐 불법 컨테이너도 갖다 놨다. 이곳은 지목이 도로다. 차라리 공한지를 주차공간으로 활용하면 어땠을까?

# 낯 뜨거운 야외 전시 공간…‘삼도대로’ 철회 후유증도

옛 제주극장 앞 야외 전시공간(바닥면적 85㎡, 전시벽면 3면)도 관리상태가 엉망이다. 당초 전시할 공간이 부족한 학생과 일반인 동호회가 연중 무상으로 작품을 전시하도록 할 방침이었으나, 2013년 개장 이래 단 한 번도 계획대로 실행된 적이 없다. 전시작도 오랫동안 방치되다보니 빛바랜 상태다. 민망하기 그지없다.

더욱이 도로 위 불법 건축물인 까닭에, 도로공사가 착수되면 당장 헐어야 한다. 시한부다. 제 돈도 이렇게 쓸 것인가?

원도심은 수십 년 전 도시계획이 된 곳이어서, 날로 가중되고 있는 주차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차라리 공한지를 접근성 개선을 위해 주차공간으로 활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또한 이곳에는 안전점검 결과, 최하위인 'E등급'을 받은 옛 제주극장 건물을 비롯해 빈집들이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다. 게다가 도로 위 불법 건축물이 철거된 곳은 행정이 되레 불법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는 가림 막까지 쳐놔 노상 방뇨 장소가 돼 버렸다. 행여 누가 볼까 낯 뜨겁다.

당초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주거환경 개선을 기대했던 주민들로서는 행정에 대한 불신감이 커 질 수밖에 없다.

전례도 있다. 제주시는 지난 2005년 가칭 ‘삼도대로’ 노선 계획을 공청회는 물론 주민들의 동의 절차 없이 슬그머니 철회한 바 있다.

‘삼도대로’는 제주에서 가장 오랜 도시계획도로다. 제주도시계획도로 중로 1류 1호선(옛 제주극장-남문로터리 구간)으로, 지난 1952년 3월 내무부 고시 제26호로 결정된 편도 2차선 왕복 4차선이다.

당시 주민들은 열악한 주거환경과 재산권 행사에 따른 규제 속에서도 이곳을 떠나지 않고 50년 넘도록 인고의 세월을 지낸 것은 언젠가는 뚫릴 ‘삼도대로’ 개통 때문이었다“며 "수십 년간 상업지역 적용을 받아 토지세, 건물세, 심지어 도시계획세 등 납세의 의무를 충실히 지켜왔는데도, 행정은 재산권 침해에 따른 보상대책도 없이 주민을 기만하고 ‘삼도대로’ 노선을 무산시켜 버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도서출판 각’과 함께 문화예술거리 조성 사업 이전에 터 잡았던 ‘예술공간 오이’는 이달 말로 문 닫는다. 사진 오른쪽은 지난 5월 문을 연 ‘예술공간 이아’.

# 빈 집 점포 지원・예술공간 ‘이아’, 지속 가능한가?

지난 5월 문을 연 ‘예술공간 이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제주도는 50억9000만원을 들여 옛 제주대 병원 지하 1층과 지상 3・4층에 연면적 2462㎡ 규모의 예술공간을 개관했다. 도는 제주대와 20년간 건물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임대료는 5년 단위로 재계약을 한다. 위탁 운영자는 제주문화예술재단이다.

그러나 제주대 병원은 정부 소유다. 또한 당초 IT 중심의 창업보육공간으로 정부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예술공간’으로 운영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이는 향후 대학이 본래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도 있다는 지적과 같다.

입주 작가 임차료 지원도 과제다. 빈 점포 임대사업 지원 기간은 5년(3년+1회 연장 2년)이다. 따라서 2019년 5월이면 지원이 끝난다. 향후 지원이 어렵다면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탄 부동산 경기 때문에 작가들도 더 버티기 힘들 것이다. 지금도 이곳을 찾는 이가 드물어 당초 계획대로 영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떠나는 이도 있다. 문화예술거리 조성사업 이전인 2011년 이 곳에 터 잡은 ‘예술공간 오이‘는 최근 건물주와 건물 용도가 바뀌면서 이달 말 문을 닫게 된다.

# 도시재생 본질은 관광지가 아니라 주민 행복 만들기

분명한 것은 현재 추진되는 원도심 재생사업이 문화에만 초점을 맞춰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를 생산하는 것도 아직 초기 단계이거니와,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접근성 개선과 정주권 확보도 미흡하다.

지금 행정은 목적과 수단을 헷갈리고 있는 것 같다. 원도심 재생의 본질은 관광지가 아니라, 주민 삶터다. 보여 주기 식 전시행정이 아니라, 주거환경 개선을 통한 마을 공동체 회복이 먼저다.

좌승훈 주필.

정주여건이 나아지면서 젊은이들이 들어오고, 그들이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주민과 이주민 간의 소통·협력을 통한 유대관계 강화도 필요하다.

문화예술거리조성이든, 관덕정 광장 복원을 통한 관광객 유치든, 그것은 ‘주민 행복 만들기’의 수단일 뿐이다. 사업 추진과정에서 주민들의 정주권이 침해되고 삶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식의 도시재생이라면 차라리 안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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