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행정, 도의원 선거구 획정 혼란만 가중

[좌승훈 칼럼] 한심하다. ‘정도에 너무 지나치거나 모자라서 딱하거나 기막히다’는 뜻이다. 제주도의회 선거구 획정을 위한 최근 일련의 과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시가 급한 제주도의회 선거구 획정이 지역 국회의원과 도지사, 도의회 의장에 휘둘려 엉망이 돼버렸다. 정치력의 부재와 무능, 비효율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폭탄 돌리기’란 혹평도 나왔다. 오영훈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 을)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제주도의회 비례 대표 축소에 대한 의원 입법 발의가 당 정치개혁 방안과 어긋나 특별법 개정안을 더 이상 진전시키기 힘든 상황”이라며 선거구 획정 책임을 제주도와 제주도의회에 떠넘겼다. 

이에 제주도와 도의회도 “현재로선 29개 선거구 재조정 밖에 방법이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제주도의회 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 권고안인 의원 정수를 2명 늘리는 것도 정부 입법으로 추진할 수 있겠으나, 정부나 국회를 설득할 논리가 약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책임지는 이 하나 없이, 시간과 예산만 낭비한 채, 돌고 돌아 공은 다시 선거구 획정위로 넘겨졌다. 애초의 기대치는 물거품이 됐고, 되레 또 다른 정치적 과제만 떠안게 된 셈이다.

원희룡 지사와 신관홍 의장, 지역 국회의원 3자가 합의했던 비례 대표를 축소하는 도의원 선거구 획정안에 대해 지역 국회의원들이 입법 발의에 어려움이 크다며 손을 떼면서 결국 없던 일이 돼 버렸다. 사진은 지난 2월 선거구 획정위의 권고안 전달(사진 오른쪽)과 지난 7월 권고안 재검토를 다룬 3자 회동.

# “선거구 획정위 왜 만들었나?”…‘없던 일’ 돼 버린 ‘권고안’ 

앞서 지난 6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지역 국회의원과 가진 제주도 정책 간담회에서 지역 국회의원들은 선거구 획정위의 권고안에 대한 재검토 입장을 제안했다. 

이어 지난달 3자 회동에서 원희룡 지사와 신관홍 도의회 의장, 강창일(더불어민주당·제주시 갑)·오영훈 국회의원은 도의원 정수 조정을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후 비례 대표 축소안을 전격 결정했다.

이는 지난 2월 선거구 획정위가 내놓은 도의원 정수를 현행 41명(지역구 29명, 교육의원 5명, 비례대표 7명)에서 43명(지역구 2명 확대)으로 증원하는 내용의 제주특별법 개정 권고안을 원점으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지난해 12월 선거구 획정위의 구성과 함께 도민 여론조사, 이해관계인 설문조사, 기관 의견 수렴, 공청회를 통해 어렵게 도출된 권고안이 ‘도로 아미타불’이 된 셈이다.

선거구 획정위의 권고안이 받아들여져도 도의회와 국회통과가 남아있어 갈 길이 먼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탄핵 정국, 대통령 선거, 인사 청문회 정국으로 난항이 예상됐음에도, 정치권과 행정의 섣부른 판단과 결정이 일을 더 꼬이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선거구 획정위도 할 말이 많다. 권고안이 원천 무효가 된 것에 대해 당시 획정위 일각에선 “우리의 역할은 끝났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럴 거면 선거위 획정위를 왜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또한 권고안에 대해 보완은커녕 원점에서 또다시 수 천 만원을 들여 별도의 여론조사를 하고, 결국 비례대표 축소안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반발과 자신들이 속한 정당 지지도 얻지 못한 채, 대안도 없이 손을 뗀 것은 의욕 과잉이 빚은 무책임한 정치라고 비판했다.

선거구 획정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인구 증가로 도내 일부 선거구가 헌법재판소가 정한 선거구 획정 기준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말을 기준으로 도내 29개 선거구 중 제6선거구(삼도1동·삼도2동・오라동, 3만5641명)와 제9선거구(삼양·아라·봉개동, 5만2426명)가 상한선(3만5444명)을 넘어선 것이다.

이는 헌법에 보장된 '평등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지역 선거구 간에 인구 불평등이 지나치면, 지역주민 간의 선거권 가치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 예산・시간 낭비…다시 ‘선거구 획정위’로, 재발 방지책은?  

문제는 향후 선거구 확정위의 역할과 권한이다. 이는 ‘원칙’과 ‘상식’의 문제이며, ‘위상’과 직결된다. 

도와 도의회 입장대로, 선거구 획정위가 최선을 다해 29개 지역구를 재조정한다고 하더라도 최근 3자 회동처럼 뒤엎어버리면 누가 책임을 지느냐는 것이다.

선거구는 대표를 선출하는 기본단위다. 선거구 획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선거구를 어떻게 조정하느냐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먼저, 선거구 획정 인구 기준을 지난해 말로 할 것인지, 지난 6월말로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인구가 늘어난 제주시지역의 2개 선거구를 나누려면, 전체 선거구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 

특히 선거구 재조정 과정에서 인구가 적은 읍·면·동지역에 대해 통·폐합이 이뤄지면, 주민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주민들의 생활권이나 정서에 어긋나는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역 의원들도 결과에 따라 수긍이 쉽지 않을 것이다. 

가까운 예로, 2014년 6・4지방선거 당시 제4선거구(이도2동 갑)에 편입된 이도2동 내 구남동(48통, 분리된 53통 포함) 지역을 생활권과 정서를 감안해 제5선거구(이도2동 을)로 조정하는 과정에서 후보자 간, 마을 간 힘겨루기로 갈등이 비화된 바 있다.

선거구 획정위의 제6・제9 선거구 공청회 모습. 선거구 획정은 매우 민감한 문제다. 결과에 따라 주민 갈등 뿐 만 아니라, 현역 도의원과 출마 예상자까지 반발하고 나설 경우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 비례대표 축소 도민 여론조사 결과 “누가 책임질 것인가?” 

‘비례대표를 축소하라’는 대다수 도민 여론조사의 결과를 어떻게 처리할 지도 난관이 예상된다.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총득표 수의 비례에 따라 당선자 수를 분배하는 선거제다. 현행 소선거구제 하에서 유권자의 사표를 방지하고, 표의 등가성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도민들이 비례대표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내놓은 것은 국회든, 도의회든, 지역구든, 비례대표든,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함께 의원 수 증가에 따른 세(稅) 부담을 의식했을 수 있다. 

이는 제도 자체보다 기존 비례대표 공천방식과 운영에 대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으로 봐야 할 것이다.    

선거구 획정은 한시가 급하다. 현행 선거법은 선거 6개월 전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마련한 뒤, 5개월 전까지 국회에서 통과시키도록 하고 있다. 이는 내년 6・13 지방선거에 따른 도의원 선거구 획정 보고서가 오는 12월 12일까지 제출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거구 획정 표류는 유권자를 우습게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 정치 신인들에게는 공정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며, 향후 명부 작성 등 선거업무 부담과 당내 경선 등 정치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정치권과 행정은 향후 선거구 획정위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신뢰를 회복하고 후유증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좌승훈 주필.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선거구 획정에 따른 공정성·공감대 확보를 위해 공론화가 필수지만, 주민에게 결정을 떠넘기는 식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어떠한 안이든, 주민·시민사회단체·도의원 출마 예상자 모두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그만큼 민감한 문제다. 결국 남은 기한 ‘최적의 안’을 도출하는 게 답이다. 100%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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