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승훈 칼럼] 그들의 예견은 맞았다. 다만 임기만 앞당겨졌을 뿐이다. 지난해 6월 이중환 서귀포시장 내정자에 대한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인사청문회장. 당시 이경용 의원은 이중환 내정자에게 “시장 퇴임 후 뭘 할 거냐”며 묻고 "제 예상은 일반직 공무원 그만두는 게 아니고 기획관리실장(부이사관)으로 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피력한 바 있다.

강익자 의원도 이 내정자에 대해 “서귀포시장 임기 후 다음은 도의 기조실장으로, 또 2년 임기 후 행정부지사로 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추궁했다.

당시 도의회 인사청문특별위원들은 이 내정자가 2년 후 시장 임기가 끝나더라도, 제주도 주요 보직에 몸담을 것이라는 의혹을 잇달아 제기했다. 의구심은 적중했다. 다만 그 시점이 2년 후가 아닌 1년 후로 ‘더’ 앞당겨졌다.

이중환 시장은 취임 100일을 맞아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임기 2년이 결코 짧다고 보지는 않는다. 외부에서 볼 때는 짧은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는 데, 사실 욕심을 가지면, 4년도 모자라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2년 임기도 업무를 파악하고 새로운 계획을 추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2년은 짧아서 성과를 못 내고, 4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도 아마 1년 만에 복귀하리라곤 전혀 예상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지방고시 1기(1996년)로 공직에 들어선 그는 1966년생이다. 그럼에도 시장이라는 직책의 막중함에 마지막 공직에 봉사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던 그였기에 하는 말이다.

# 10개월 임기 서귀포시장 공모…‘선거용’ 비판 목소리 커

문제는 업무의 일관성과 효율성이다.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행정시장 예고제(도지사-시장 러닝메이트)는 유명무실했다. 더욱이 2년 임기마저 지켜지지 않아 업무의 연속성이 분절되고, 지역 발전을 위한 중장기 정책을 추진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06년 7월 특별자치도 출범이후 서귀포시 역대 시장의 임기를 살펴보면, ▷이영두(2006. 7. 1~2006. 11. 25) ▷김형수(2006. 12. 29~2008. 12. 26) ▷박영부(2008. 12. 29~2010. 6. 30) ▷고창후(2010. 7. 1~2011. 12. 29) ▷김재봉(2011. 12. 30~2013. 8. 12) ▷한동주(2013. 8. 13~2013. 11. 29) ▷양병식(2013. 12. 24~2014. 6. 30) ▷현을생(2014. 7. 8~2016. 6. 30) ▷이중환(2016. 7. 1~2017. 7. 31)으로, 지난 11년 동안 총 9명이 임명된 가운데 평균 임기가 1년 2개월에 그치고 있다.

제주시장도 ▷김영훈(2006. 7. 1~2008. 6. 30) ▷강택상(2008. 7. 1~2010. 3. 2) ▷김방훈(2010. 3. 17~2010. 6. 30) ▷김병립(2010. 7. 1~2011. 12. 29) ▷김상오(2011. 12. 30~2014. 6. 30) ▷이지훈(2014. 7. 8~2014. 8. 18) ▷김병립(2014. 12. 18~2016. 6. 30) ▷고경실(2016. 7. 1~ )으로 총 8명이 임명됐다. 이 중 이지훈 전 제주시장은 불과 한 달 만에, 한동주 전 서귀포시장은 석 달 만에 중도 사퇴했다.

제주특별자치도 올 하반기 공무원 정기인사와 서귀포시장 공모, 정무라인 보강 등 최근 일련의 인사는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원희룡 제주도정의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집권 후반 친정 체제 구축…지역 현안 정면 돌파 의지 반영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무릅쓰고서라도 1년 만에 서귀포시장을 기획관리실장으로 복귀토록 하고, 10개월 단명의 서귀포시장을 공모하게 된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이는 재선에 무게를 둔 원 지사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한마디로 ‘친정체제’ 구축으로 귀결된다.

이는 지난 6・4 지방선거와는 사뭇 다른 행보다. 불과 선거 3개월 전, 출마를 공식 표명했던 그였기에 하는 말이다. 원 지사는 당시 ‘제주 수재(秀才)’라는 지명도 말고는 이렇다 할 지역 기반 없이, 인물 선거와 세대교체 바람 속에 지방선거 사상 최고 득표율(59.97%)로 당선됐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최근 일련의 인사 논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올 들어 무리수를 둬가며 정무라인을 대폭 보강한 것이나, 청문회에서 과거 특정 범죄 가중처벌법 위반(도주 차량)과 음주운전으로 도덕성 논란이 예상되는데도, 3선 도의원(7・8・9대) 출신의 안동우 전 전농 제주도연맹 의장을 정무부지사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진보정당 출신의 첫 도의원(2004년)이자,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제주선거대책위 공동 선대위원장을 지낸 안 부지사는 구좌읍 김녕리 출신이다.

또한 서귀포시장 공모와 관련해 지방정가에선 차기 시장 후보로 고위 공직자 출신의 K(서귀동), O(성산읍), 또 다른 O(남원읍), H(대정읍)씨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인사를 고도의 정치공학적・전략적 도구로 이용해선 결코 안 될 일이지만, 일각에선 내년 선거를 감안할 때, H씨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게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정무라인을 강화한 것도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올 들어 1월에 강영진 정책보좌실장(4급), 3월에 박재구 정무특보(2급)・김치훈 정책보좌관(5급), 4월에 라민우 서울본부 정책협력관(4급)이 합류했다.

이 중 라 협력관과 김 보좌관은 지난해 4ㆍ13 총선 직후 도정 쇄신 차원에서 자진 사퇴했었으나, 1년 만에 복귀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이벤트 쇼’라는 비아냥거림도 있다.

또한 지난 1월 정기인사와 달리, 내부 발탁에서 최근 개방형 직위로 공모에 나선 공보관도 무늬만 공모일 뿐, 측근 중 K씨가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 공무원 줄 세우기・사무관 부인들 친목회 청산 ‘큰 성과’

물론 이 같은 인사 행태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가 있을지언정, 역대 도정들도 그랬다. 자신의 도정 철학 실현을 위해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중용한다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회전문 인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지사 주변에 그만큼 인물이 없다는 방증이다. 더욱이 지사 취임직후 ‘선거 공신’・‘측근 배제’를 공표했던 그였기에 비판의 목소리가 더 크다.

일각에선 이에 대해 원 도정이 집권 후반 친정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제2공항・신항만 건설, 대중교통 전면 개편, 시민복지타운 행복주택 건설, 쓰레기 처리 문제와 상ㆍ하수도 시설 확충 등의 지역 현안에 대한 정면 돌파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또한 원 지사가 공무원 줄 세우기・편 가르기의 폐단을 없앤 것이나, 사무관급 이상 공직자 부인들의 친목회를 청산토록 한 점을 들어 선거와 구분 짓는 분위기다. 공직사회가 극히 일부라도 선거와 밀착되는 폐단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 여・야 뒤바뀐 선거판・대선 득표율 ‘주목’…선거 국면 돌입

어쨌거나 최근 일련의 인사에 대해 하마평이 무성한 걸 보니, 일찌감치 6・13 지방선거 국면으로 접어든 모양새다. 지역 현안에 대한 각 정당의 날선 공방도 시작됐다.

더욱이 6・13 지방선거는 이번 대선 결과로 여・야가 뒤바뀐 상황이어서 출마 예상자들의 수읽기도 복잡해질 것이다.

비록 지난 대선 결과이긴 하나, 도내에선 더불어민주당(문재인) 41.08%, 자유한국당(홍준표) 24.03%, 국민의당(안철수) 21.41%, 바른정당(유승민) 6.76%, 정의당(심상정) 6.17%의 득표율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좌승훈 주필.

그러고 보니, 최근 원 지사의 잇단 마을투어와 함께 출마 예상자들의 물밑 행보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물밑 작업이 속도를 내며 구체화되는 양상이다. 이는 조기 대선으로 정치행보가 빨라진 탓도 있다.

게다가 6・13 지방선거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대로 지방분권형 개헌 투표가 동시에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국민 주권 행사가 이뤄진다면, 유권자의 판단도 예전과 딴 판으로 흐를 수 있다. 이래저래 지난 6・4 선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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