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강정포구에서 ‘제3회 제주국제부토페스티벌’
30명 국내외 독립 예술가들 ‘평화의 발자국’ 찍다...

▲ 제주 국제 부토 페스티벌. 사진=황규백 씨 제공
[제주도민일보=조보영 기자] 공연이 끝나자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축제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금세 눈시울을 붉히더니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뜨겁게 서로를 안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혼신의 힘을 쏟아낸 ‘그’는 더 많은 울음을 쏟았다. 작품의 기획·연출은 물론 직접 공연을 펼치기도 한 ‘라무홍’ 예술감독에게 눈물의 이유를 물었다.

“감사했던 분들이 참 많았다. 우리들이 독립적으로 만든 페스티벌이다. 마지막 순간이 되자 이 공간에서 춤을 추고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한 모든 분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오늘 무대가 강정마을 해군기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더욱 뭉클했다”며 축제를 마친 소회를 밝혔다.

‘암흑의 춤’, ‘죽음의 춤’이라고도 불리우는 ‘부토’는 1959년 일본 히쓰가다 다쓰미가 창시한 춤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일본에서 자신들의 허무주의와 세계 문화의 흐름이었던 표현주의, 모더니즘을 예술로 승화시킨 퍼포먼스다. 그후 전세계적으로 센세이션한 반응을 일으키며 실험적인 무용장르로 인정받아 ‘살아있는 영혼의 춤’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제주도민일보=조보영 기자] 제주 국제 부토 페스티벌

25일 '평화의 발자국'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주 국제 부토 페스티벌'은 강정 해군기지의 공사 현장을 무대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영혼의 몸부림을 날 것 그대로 표현했다. 공연에 참가한 예술가들은 당일 유난히 세차게 불어치던 바람의 소리를 음악과 춤으로 타넘으며 처절하리만큼 아름다운 영혼의 의식을 성대하게 치러냈다. 그 기괴한 동작과 처절한 표정을 현장에서 접한 관람객들은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강희준(16, 볍씨학교 재학 중) 양은 “멀리서 볼 때에는 그냥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구나라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니 몸짓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는 것 같고 한동작 한동작이 너무 예뻐서 넋을 놓고 보게 됐다”고 말했다.

김규홍(35, 서울 양재2동) 씨와 김유화(30세, 서울 금천구) 씨는 “강정 마을에 식사를 하러 왔다가 사람들이 모여있어서 우연히 공연을 보게 됐다”며 “어떤 취지의 퍼포먼스인지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음악과 서양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서 새롭고 다양한 느낌이 전해지는 특별한 퍼포먼스 같다”고 평했다.

이에 라무홍 예술감독은 “관객들은 이 퍼포먼스의 의미를 모를 수밖에 없다. 그게 맞는 거다. 각자가 느끼는 마음의 울림이 있을 것이다. 그게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느끼고 싶은대로 해석할 수 있는... 우리는 질문만 던지는 거다. 무엇이 느껴지는지... 오늘 공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꼭 그 질문을 드리고 싶었다”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제주도민일보=조보영 기자] 제주 국제 부토 페스티벌

이날 공연에는 아주 특별한 예술가가 동참했다. 스스로를 ‘천연육체시인(몸으로 시를 쓴다는 뜻)’이라 부르는 부토 예술가 ‘무시마루 후지에다’ 씨가 그 주인공. 1952년 일본 아이치현에서 태어난 그는 돗토리 대학 수의과를 다니면서 연극 활동을 시작했고 독립 퍼포머로 활동하며 일본 전역은 물론 세계를 무대로 공연을 했다. 이후 자신만의 독특한 무용 작품을 만들어 꾸준한 예술 활동을 벌이고 있다.

무시마루 씨와 라무홍 감독의 인연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에서 열리는 축제 참여를 위해 3개월간 룸메이트로 지내며 서로를 알게 된 둘은 인생의 스승과 제자가 되어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일본의 오키나와 역시 이곳 제주와 마찬가지로 미군 해군기지 건설 문제가 진행 중인 상태다. 멀고도 가까운, 다른 듯 같은 두 나라의 예술인들은 이곳 강정에서 '평화'의 깃발을 들어올리기로 의기투합했고 무시마루 씨는 기꺼이 자비를 들여 이번 축제에 참여했다. 다른 예술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또한 제주산 농산물로 만든 요리와 천연소재 수공예품 등을 판매하는 '개구럼비 마르쉐'도 유기농 장터를 열어 축제에 동참했다. 작지만 큰 믿음의 힘들이 똘똘 뭉쳐 별도의 후원없이 독립적인 예술 공연을 만들어낸 것이다.

▲[제주도민일보=조보영 기자] 제주 국제 부토 페스티벌

친구와 함께 먼발치에서 무대를 주시하고 있던 이주언(30, 인천 간석동) 씨는 “태어나서 처음 제주도 여행을 왔다. 어제는 4.3 평화 공원과 해녀 박물관을 둘러봤다. 그리고 오늘 강정 마을을 찾았다”며 “막상 눈으로 공사 현장을 보니 분노와 슬픔이 차오른다. 제주는 아픈 역사가 많다. 마냥 즐길 수만은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눈앞의 이 현실조차 참으로 잔인하다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공연이 끝난 후 참여 예술가들은 관람객들과 둥근 원을 만들어 춤을 추면서 ‘평화의 발자국’을 찍었다. 오늘 그들이 새겨놓은 평화의 메시지는 사라진 구럼비 바위와 함께 더 오랜 울림으로 기억될 것이다. 올해로 3회를 맞은 ‘제주국제부토페스티벌’. 앞으로 어떤 축제로 그 명맥이 이어질지 사뭇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아주 가볍게 물었다.

라무홍 예술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왜 부토를 하냐. 왜 힘들게 그 길을 가느냐고 묻는다. 물론 혼자서 운 날도 많다. 1년 동안 모은 돈을 이 축제에 모두 쏟아붓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큰 사랑을 받는다. 그리고 그 사랑을 나눌 수가 있다. 이것이 부토다. ‘사랑과 평화’... 결코 쉽지 않은 말인데 그게 없이는 춤을 출 수가 없다. 두 가지 없이는 꿈을 꿀 수도 없다...”는 묵직한 답변으로 그가 숨쉬는 존재의 이유를 밝혔다.  

▲ 제주 국제 부토 페스티벌. 사진=황규백 씨 제공

▲[제주도민일보=조보영 기자] 제주 국제 부토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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