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일보 선정 2018년 10대 뉴스⑨]
의료산업 경쟁력 강화 VS 의료공공성 약화 충돌
원 지사 제주 미래 위해 불가피, 내국인 진료 강행 시 허가 취소도 불사

우여곡절이 많았던 2018년 황금개띠의 해가 가고 풍요를 상징하는 황금돼지의 해인 2019년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왔다.

도내 경제의 고공성장을 이끌었던 부동산 시장은 미분양의 늪에 허덕였으며, 교통난과 쓰레기 대란, 하수처리난 등 도민의 삶의 질은 계속해서 나빠지기만 했다.

또한 민의를 저버린 도의회의 대규모 개발사업장 행정사무조사 부결, 영리병원 조건부 허가와 관련한 원희룡 도정의 숙의형 공론조사의 무력화는 도민사회의 공분을 자아냈다.

다사다난했던 올 한해 제주지역의 이슈들을 10대 뉴스로 정리해 되돌아본다. <편집자 주>

지난 5일 국내 첫 영리병원인 국제녹지병원이 조건부로 개원허가 했다.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12월 경제자유구역에서 외국인 전용병원으로 영리병원 설립이 허용된 지 16년만이다.

당시는 국내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외국인만 설립할 수 있었으며, 환자도 외국인만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2006년 2월 제주도특별자치법은 제주도에 외국인 영리병원과 내국인 진료를 허용했다.

같은 해 7월에 경제자유구역에 국내의료법인이 자본 합작형태로 영리병원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2012년 8월에는 외국 면허를 가진 의사 비율 등을 규정한 시행령 및 규칙이 통과돼 외국 영리병원 유치를 위한 관련 제도도 완비됐다.

2013년 2월 중국의 텐진화업그룹이 제주도에 국내영리병원 1호인 ‘산얼병원’ 설립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영리병원 설립 움직임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는 그해 8월 이에 대한 승인을 무기한 보류하기도 했으나, 다시 2015년 4월 제주도에 ‘녹지국제병원’ 설립계획서가 제출되자 12월에 결국 이를 승인했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이를 뚜렷하게 반대했다. 지난 10월 ‘녹지국제병원 공론화를 위한 도민참여형 조사 숙의토론회’에서 참여 배심원단 200명 중 180명이 참석한 가운데 투표를 진행한 결과, 참석자 58.9%(106명)가 영리병원 불허를 선택했다.

찬성의견은 38.9%(7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종 허가권자인 제주도지사가 도민의견과는 정반대로 허가를 결정했다.

지역단위에서 처음 시도된 숙의형 민주주의 실행의 초석이 될 수 있었던 공론조사의 결과를 뒤엎음으로써 영리병원에 무참히 짓밟힌 사례로 남게 됐다.

녹지국제병원은 성형외과,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로 한정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대상으로 한다. 내국인 진료는 금지되고 건강보험. 의료급여는 적용되지 않은 말 그대로 영리를 추구할 수 있는 병원이다.

영리병원 허가를 두고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제주의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하며, 녹지국제병원이 내국인 진료를 강행하면 허가 취소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제주도가 녹지국제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막을 수 있을지는 법적·현실적으로 장담하기 어렵다.

영리병원 허가로 인해 의료민영화를 완성하는 퍼즐 중 가장 핵심적인 조각을 이어붙인 셈이다.이는 한국사회 보건의료시스템의 ‘공공성’을 유지하는 최후의 보루인 ‘건강보험제도와 의료기관의 비영리성’이라는 댐이 무너지는 균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첫 영리병원 개원을 두고 찬성과 반대 측이 부딪히며 균열은 시작됐다. 그러나 현 정부는 도지사의 권한을 강조하며 발을 슬그머니 빼는 모양새다.

문재인 정부는 현 정권에서는 ‘제주도에서 판단할 문제’라며 묵인하고, 국내에서 더 이상의 영리병원 허가를 있을 수 없다고 쐐기를 박았지만 틈 사이로 흐르는 물을 막을 수는 없다.

제주도 영리병원 설립을 계기로 영리 병원설립 요구가 확산될 공산이 크다. 현행법상 경제자유구역에서는 외국인 의료기관 설립이 가능하다.

경제자유구역은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당진·아산·평택), 대구·경북, 새만금군산, 동해안(강릉·동해), 충북(청원·충주) 등 전국에 8개 권역이 존재한다.

2014년에도 인천 송도에 국제병원을 설립하려 했으나 투자자가 없어 무산된 적이 있다. 부산시도 부산 진해경제자유구역 내 명지 국제신도시에 수년째 영리 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시도해왔다.

47병상밖에 안되고 진료과목 또한 성형외과,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로 한정되어 있어 작은 병원이 무슨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영리병원 허가가 뜨거운 이슈로 급 부상한 이유는 규제완화를 통한 의료산업 경쟁력 강화, 일자리 증가라는 찬성 측 논리와 의료의 공공성 약화, 나아가 의료민영화 허용이라는 반대 측 논리가 충돌 균열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영리병원 철회를 위한 목소리는 뜨겁다. 다시 촛불이 켜졌다.

“의료비를 올리고 건강보험 당연 지정제를 파괴하는 제주 영리병원을 철회하라! 제주도민의 민의를 짓밟은 민주주의 파괴자 원희룡 도지사는 퇴진하라”는 요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제주도정이 선택한 영리병원의 길이 도민의 민의와 미래, 제주관광과 경제에 큰 힘을 줄 수 있는 것인지, 진정 도민들을 위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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